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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게 살고 싶은 날..^^

냉장고 속 이야기

냉장고 속, 정말 별게 없네요^^  하얀 바구니얀에는 김밥재료가 들어있답니다.

집 안을 정리하다 보면 느끼는 바가 참 많다. 그중 도대체 이런 건 왜 샀을까.. 하는 생각은 거의 정리때마다 하게 된다.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바가 다르고, 필요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욕망이 달라서 책이든 옷이든 물건이든 음식이든 어떤 것들은 누구에게는 필수템이지만 누구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것들도 있다. 또 때로는 있으면 좋지만 그래도 사용을 자제하게 되는 것들도 있다.

한 번은 내 직장 동료가 우스갯소리로 나처럼 살면 우리나라 경제는 어떡하냐고 해서 함께 깔깔 웃은 적이 있었다. 사실 물건을 잘 사지않는 건 아니고 그저 오래 쓰는 편이라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일 듯하다. 냉장고, 세탁기, 핸드폰 등 한 번 사용하게 되면 고장이 나지 않는 한 바꾸지 않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내가 뭔가를 잘 사지 않는다고 느끼나 보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는 결혼할 때 사서 20년 넘게 쓰다가 지난해에 바꿨다. 다른 집에 가거나 TV광고를 보면 양문형 냉장고가 당연한 것처럼 보여서 이참에 우리도 양문형으로 바꿀까 잠깐 고민도 했지만 양문형 냉장고의 깊이로 인해 냉장고 안팍의 공간에 무리가 있을듯해서 결국 단문형으로 바꿨다. 나의 경우 깊이 있는 음식물은 손도 마음도 쉽게 가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데다가 우리 집은 냉장고 가득 뭘 채워놓고 살지도 않아서(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런거 같지도 않다ㅠ) 굳이 양문형은 없어도 될 것 같았다. 가끔은 냉장고 공간이 부족할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어쩌다 한두 번 있을까 말까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냉장고 문을 열면 뭐 먹을만한게 없어보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냉장고 속은 늘 미로 같을까. 정말 작은 공간인데 그 공간에서 길을 잃는 건 나 혼자만의 이야기일까. 냉장고에는 음식이 아닌 것들이 음식인척 숨어있기도 하다. 화석이 된 생선과 고기, 어디서 났는지, 언제 넣어뒀는지도 모를 떡과 나물 얼린 것들, 뭔지도 모를 것들이 검은 봉지에 몸을 숨기고 있다. 그것뿐이랴. 왜 먹지도 않을 가루와 환 종류, 소스류와 효소들과 발효 초등의 액체류를 그리도 사들였는지.. 먹을 것 같아서, 몸에 좋다니까, 남들이 사니까 나도 사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것들 중에 꾸준히 먹는 게 몇 가지나 될까.

먹지도 않을 것들을 사서, 그것들을 정리해두기 위해 샀던 플라스틱 병이나 통은 또 얼마나 되는지. 플라스틱은 가볍고 새 것일 때는 보기도 좋고 값도 저렴해서 구입을 하게 되지만 설거지 몇 번이면 이상하게 그 빛을 잃는다. 보이지 않는 스크래치가 처음의 그 매끄럽고 깔끔한 모습을 잃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플라스틱병이나 통은 유리병으로 대체가 된다.

플라스틱을 유리병으로 바꿔주면서 세트로 된 유리병들을 사고 싶은 유혹에 입을 다시곤 했었다.  똑같은 모양과 색깔의 의 용기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된 냉장고 속을 상상하는 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그러나 나는 이미 많은 병들이 있었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를 걱정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주스나 잼, 식품, 다양한 소스 등이 저장되어있던 병들은  모양도 크기도 다양해서 버리지 않고 깨끗이 씻어 잘 말려두었다가 어느 순간  숫자가 늘어 일부는 분리수거장에 내놓고 일부만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고 있다. 굳이 내가 쓰는 냉장고 누가 볼 것도 아니고, 또 누가 본들 무슨 상관이랴. 

냉장고 속 재료들을 살펴 오래된 것들은 버리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식별이 잘 되도록 반짝이는 유리병에 넣어주고, 필요에 따라 이름표도 붙여 뚜껑 꽉 닫아 보관하니 한 눈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나름 정성으로 정리한 만큼 잊지 않고 먹으려고 한다. 그리고 적어도 앞으로는 잘 먹을 것 같지 않은 건 사지 않기로 한다. 아까운 것도 아까운 것이지만 버리는 일도 일이 되기 때문에 식품류도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구매하려고 한다. 늘 먹는 식재료라면 몰라도 어쩌다 먹는 것들은 어쩌다만 먹게 되는 이유가 있다. 내 입맛에 맞지 않거나 늘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내게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의미도 될 것이고, 내 몸에서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고작 나보다 조금 더 크고 덩치가 있을 뿐인데 냉장고 속은 복잡하기가 창고 저리 가라다. 어쩌면 안쪽 어딘가에서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나도 모르게 곰팡이와 세균을 번식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냉장고 정리에 꼬박 서너 시간을 보내야 되는 현실 앞에서 음식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냉장고마저 방치했나 싶어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다른 어떤 것보다 청결과 위생이 요구되는 냉장고에게 말해본다. "야, 냉장고! 너는 내가 시원하게 해 준다.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