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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화라면..

안시성.. 고구려를 지키다

영화를 선택할 때 역사를 모티브로 하는 전쟁 영화에서 나는 늘 망설인다. 이유는 두 가지다. 이미 대략 내용을 알기 때문에 진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쉽게 동하지 않는다는 게 첫째라면, 두 번째는 영화가 끝날 무렵 나는 어느새 애국자가 되어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애국자(좋은 의미의)가 되는 것이야 흉이 될게 무어랴만 아주 간혹은 영화적 마케팅에 넘어가 영화의 시각을 아무 생각 없이 쫓아갔구나 싶어 가슴 한편이 씁쓸해졌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안시성도 그런 이유에서 볼까말까하다 그래도 고구려 역사인데.. 그래도 안시성인데.. 하는 마음이 커서 보게 되었다. 누구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찾는 사람들을 고구려 신화에 매몰되었다고도 하는데 이유야 어쨌든 나는 고구려가-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웅대함이 호쾌하고  중국에 맞짱뜰만큼 힘을 겨룰 수 있었던 고구려가 통쾌하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역사 속에서 사라진 고구려는 허망하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아래와 같이 자막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전쟁의 신이라 불리우는 당나라 황제 이세민

그가 20만의 군대를 앞세워 고구려를 공격해 들어왔다

개모성, 비사성, 요동성, 백암성 등의 국경의 성들이 순식간에 당나라 군대에 함락되었다

그러자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은 15만의 군사를 보내 주필산에서 이세민을 상대하도록 했다

그것은 고구려의 운명을 건 결정적 전투였다

 

당시 수나라가 망하고 그 뒤를 이어 중국을 통일한 당나라는 주변 민족들을 차례차례 정복하며 세력을 팽창시키고 있었다. 당나라 2대 황제 태종은 조선시대 태종과 비슷한 인물로 당나라를 세우는데 공이 컸으며, 형과 동생을 죽이고 왕이 된 인물로 전쟁의 신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전략가이자 장군이었다고 한다. 그 무렵 고구려는 수나라와의 전쟁영웅이었던 영류왕이 당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당과의 전쟁에 대비하며 천리장성을 쌓는 등의 준비를 하던 중 연개소문에 의해 살해된다. 

연개소문은 저자세적인 외교정책으로 전쟁을 피하고자 했던 영류왕과 달리 당에 강경하다. 주변 이민족을 하나의 중국으로 통일하려는 야욕을 가진 당태종과 이에 맞서는 연개소문의 한 판 전쟁은 불가피하다. 마침내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공한 당태종은 고구려의 성들을 하나하나 굴복시키고, 이에 연개소문의 개마 군단은 주필산에서 고구려의 운명을 걸고 사활을 건 승부를 벌인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 당태종은 평양으로 진격하기 전 배후에 있는 안시성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안시성은 인구 10만 정도의 성이었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당군이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제 아무리 기를 써도 난공불락이다. 성을 부수기 위해 돌을 쏘아 날리고, 성문을 부수고, 사다리를 기어오르고, 목탑을  이용해봐도 안되니 마침내 안시성 보다 높은 토성을 쌓아 공격하려고 한다. 영화는 이렇게 내내 전쟁 장면을 보여준다. 전쟁 장면이 마치 게임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이어 붙인 것처럼 감각적이어서 놀라웠다면, 당나라 군을 막아내는 안시성의 준비된 방어 태세에 감탄하게되고, 당나라에 뜨겁게 저항하는 안시성 사람들의 결연한 의지에 응원을 보내게 된다. 영화 속에서 연개소문의 명령에 따라 안시성주를 죽이러 온 자객조차도 그렇게 느꼈는지 자객은 외려 안시성을 도와야 한다고 연개소문을 설득한다. 연개소문은 안시성을 도와 당군을 물리친다.

언젠가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이 어쩌면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쓰여진 소설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역사를 뒤져봐도 양만춘에 관한 기록이 없으니, 승자와 남자 위주의 역사였던 고대를 지나면서 걸출한 여자 성주에 대한 기록이 제대로 기록되지 못하고, 삭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토대로 쓰였던 듯하다.  그 책에 의하면 고구려 중앙의 주류와 멀어진 평강공주의 후손이 양만춘이고, 양만춘은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안시성의 성주이다. 평강공주는 누구인가. 우리는 알고 있다. 교과서에서 읽었다. 부모(왕과 왕비)의 반대에도 자신의 소신대로 바보 온달과 결혼하고, 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 고구려의 장군으로 키워낸 뚝심 있는 여장부가 아니던가. 

안시성 성주가 누구였든 셩별이 무엇이었든 분명한 건 당태종의 자만심을 꺾었다는 사실이다. 당태종은 퇴각하는 길에 병을 얻어 얼마 있다 죽었으며 다시는 고구려를 침공하지 말 것을 후손에게 유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태종은 실록을 가져오라고 해서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고치거나 지우라고 했다는 말도 있다. 대고구려 전쟁에서의 실패도 그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쩌면 그래서 고구려를 당으로부터 지켜낸 안시성 성주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당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웠지만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구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말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