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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화라면..

가버나움- 혼돈 속 기적을 이루다

'자인'을 연기한 자인 알 라피아는 생계를 위해 여려 일을 전전하던 시리아 난민으로, 베이루트에서 캐스팅됐다.

'가버나움'의 칸영화제 초청 후에 자인과 가족들은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을 받아 2018년 8월, 노르웨이에 정착했다.

'요나스'를 연기한 트레저와 가족들은 불법 체류 중이던 레바논을 떠나 케냐로 돌아갔다.

트레저도 곧 학교에 다닐 예정이며 아전하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사하르'와 '메이소운'역을 맡은 시드라와 파라는 베이루느의 거리를 벗어나서

유니세프의 특별지원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며 학교를다니기 시작했다.

제작진은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가버나움' 재단을 설립했다.

현재 14살이 된 자인은  생애 처음 학교를 다니게 됐다.

영화가 끝나고 화면이 올라가면서 나오는 자막의 내용이다. 영화는 자막에서도 느껴지듯이 사회적인 문제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출연자들은 연기를 전문으로 하는 배우가 아니라 실제로 남민들이고. 학교도 가본 적이 없으며, 거리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영화를 선택할때 처음 접하는 정보는 제목일 수밖에 없다. 가버나움..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라서 선뜻 영화의 내용이 유추되지 않아 영화를 볼까 말까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전 세계를 울린 미친 걸작'이라니 안 볼 수 없지 않은가.          

안 봤으면 후회할 뻔했다. 안 봤으면 좋은 영화인지 아닌지조차 모르니 후회할 일도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영화를 본 건 매우 잘한 일이었다.  이 영화를 함께 본 지인은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화가 나고 슬폈다고 했다.

영화는 레바논의 가난하고 복잡한 마을의 한 아이로부터 시작이 된다. 이 아이는 의사의 소견에 따르면 치아발육으로 봐서 12살이란다. 이 아이는 자신의 부모를 고발한다.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는 부모, 그럼에도 끊임없이 아이들을 낳는 부모.. 자인은 임신한 엄마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해달라고 법정에서 호소한다. 태어나게 될 아이도 결국 자신처럼 살게 될 테니까.

자인은 어째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영화를 보면 정말 자인의 부모의 무지에 황당함을 느끼게 되지만 그 부모도 부모지만 삶의 배경-관습, 사회, 교육, 문화, 경제, 등이 매우 열악하고 복잡하다. 영화가 시작될 때 위에서 내려다보듯 보여주는 마을의 모습처럼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미로처럼 얽혀있는 모습이 꼭 그들의 삶을 대변하는 느낌이다.

자인의 부모는 능력도, 변변한 직업도 없고, 아이들은 여덟이나 된다. 자인은 학교도 못 가고 가짜 처방전으로 마약성분이 들어있는 약을 사서 물에 탄 주스를 길거리에서 판다. 어느 날 부모가 여동생 사하르를 나이 든 남자에게 팔아넘기듯 결혼시키려 하자 동생을 데리고 도망치려고 하지만 계획은 틀어지고 결국 어린 여동생은 조혼을 하고, 자인은 집에서 도망친다.

우연히 만난 바퀴벌레 맨 할아버지를 따라 무작정 버스에서 내린 곳은 놀이공원. 일자리를 구하지만 아직 어린 자인에게 일자리를 줄곳은 없다. 배가 고픈 자인은 불법체류자인 라힐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 라힐은 자인을 집으로 데려와 먹을 것을 준다. 라힐에게는 어린 아들, 요나스가 있다. 자인은 라힐의 집에서 살게 되고, 라힐이 일하러 간 사이 요나스를 돌봐준다. 라힐은 추방되지 않기 위해 체류증을 구하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어느 날 시장에 간 라힐이 돌아오지 않게 되고 자인은 어린 요나스에게 먹일 것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라힐과 자인을 보면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라힐이 자인의 손을 잡아 준 것도 고맙지만, 라인의 말대로 어린 아들을 생판 모르는 자인에게 맡기고 일을 하러 갈 때 느꼈을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자인을 신뢰하게 되고 자인이-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자인이 요하스와 형제 같았다고 법정에서 증언해주는 모습에서 새삼 인간다움을 본다.

자인은 어린 요나스를 어떻게든 돌보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물도 끊기고 마침내 집에서도 쫓겨나자 자인은 요나스를 잘 돌봐주겠다는 시장 아저씨의 (거짓) 말을 믿고 요나스를 맡긴다. 한편 자인은 시장에서 만났던 여자아이처럼 자신도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 외국으로 가기 위해 자신의 출생 서류를 찾아 집에 간다. 하지만 출생증명서는 존재하지도 않고, 여동생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팔려가듯 결혼한 어린 여동생은 임신 후 하혈을 했고, 여동생을 아내로 데려갔던 남자는 여동생을 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신분증이 없어서 병원문턱을 넘지도 못한 거였다. 이에 자인은 여동생을 데려갔던 남자를 칼로 찌르게 된다.

프랑스 말로는 혼돈을 의미하기도 하는 가버나움은  갈릴리 서북쪽에 위치한 도시로 '위로의 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고대 가버나움은 매우 번화한 곳으로 예수님이 나사렛을 떠나 많은 이적을 행한 곳이지만 사람들은 에수님을 믿지 않았고, 예수님은 " 가버나움아, 너는 하늘까지 높여졌으나  지옥까지 쫓겨 내려가리라!" 고 예언을 했다고 한다. 영화 속 가버나움은 지옥 같은 현실이 펼쳐지는 곳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위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위로라는 말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본다. 그리고  그 변화는 바로 자인 같은 사람으로부터 시작이 될 거라고 믿는(간절하게)다.

마지막 장면에서야 비로소 신분증에 붙일 사진을 찍으며 여태껏 보지 못했던 활짝 핀 웃음을 보여준 자인. 자인을 연기한 자인 알 라피아처럼 영화 밖의 수많은 자인들에게도 희망이 자라나길 바라며, 당장 코앞의 일들 해결하기도 바쁜 나 같은 사람에게 좀 더 넓게, 좀 더 멀리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하는 이 영화를 당신도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