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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화라면..

if only.. 돌이킬 수 없는 운명 속에서 당신은..

아주 우연처럼 보게 된  영화다.  우연...   우연이라는 말은 필연을 필연적으로 등에 지고 존재한다. 어쩌면 우연은 필연의  객관성이나 연관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그게 자연이든 신의 입김이든 혹은 퍼즐 맞추기든 어떤 식으로든 모든 사물은, 혹은 상황은 유기적으로 잘 짜인 촘촘한 그물망 속의 한 칸 그물코 같은 것인데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흐르는 삶의 속성상 앞만 바라보는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미처 깨닫기도 전에 어떤 사건에 맞닥뜨리고 당황할 뿐이다. 그리고 절망한다. 그리고 깨닫고 후회한다. 아니 후회하고 깨닫는 건가..

영화에서 여자와 남자는 사랑한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에 대한 사랑을 분명히 알지만 남자는 바쁜 생활에 사랑 같은 건 뒷전이다. 일은 해야 하니까, 인정받아야 하니까, 우선순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가 자명한 삶이다. 여자가 부모님을 보러 가자고 해도 시큰둥... 여자의 졸업 콘서트가 있는 날인지도 모를 만큼 여유가 없다.

여자는 이런저런 상황에서 남자의 태도에 실망하고 택시에 오른다.  남자는 그 택시를 바라볼 뿐이다. 11시, 여자를 태운 택시는 출발하자마자 옆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다른 차량과 충돌한다. 그 장면을 눈 앞에서 본 남자는 슬픔과 자책 속에 잠이 든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남자와 여자는 영화가 시작되던 그날 아침 그 시점에 가 있다. 꿈인가 우연인가 그러나 남자는 이내 꿈도 우연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남자는 여자에게 일어난 일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이미 살았던 시간이니만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너무 잘 알고 있어 마주했던 일들을 피하려 하지만 피했다 싶으면 다시 제자리... 어떤 사람이 커피가 든 종이컵을 버려 여자 옷의 앞자락이 커피로 물드는 상황을  피하면 결국 다른 이유로 옷을 버리고 마는..   

남자는 사소한 건 바뀔 수 있지만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말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여자와 남자는 여자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그 남자의 어린 시절의 상처도 마주하고(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모든 것(과거, 아픔, 고통마저도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에 가슴 아파한다.  그렇게 다시 런던으로(현실로, 삶의 현장으로) 돌아온 그들, 그 전날 혼자 탔던 택시에 여자가 오르고.. 남자도 오른다. 남자는 택시 뒷좌석에서 여자를 꼭 껴안고 결국 11시가 된다.

5분을 더 살든 50년을 더 살든 그건 중요치 않아..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알게 된 남자가 한 말이다. 혼자 남겨진 여자는 남자가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고 오열한다.       

시간의 유한함이 주는 관계의 속절없음에 가슴이 아파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영화에서의 남자처럼 사랑은 한시적인 상황에서 그 진가를 드러낸다. 미리 알았다면 더 많이 사랑하고 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별개라는 것은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게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 속에서 여자가 커피로 얼룩진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들렀다가 남자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일(투자설명회) 관련 파일을 발견하고-사실 파일은 똑같은 게 두 개가 있었다.-파일을 전달하기 위해 투자설명 중에 뛰어들어 설명회를 망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반복되는 상황에서는 역시 여자가 파일을 발견하고 투자설명회에 전하러 가긴 하지만 문밖에서 다른 파일이 있음을 알고 돌아섬으로써 남자의 투자설명회는 성공적으로 끝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이는 사소한 일이다. 왜냐 하면 남자가 투자설명회에서 성공을 거두었든 그렇지 않았든 그 일은 커다란 줄기의 운명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니까.. 게다가 이 영화에서 처음에는 여자가 죽는다. 그러나 여자의 죽음을 막아보려돈 남자의 노력에도 결국 바꿀수 없다는 걸 알게된 남자는 사랑에 충실하지만 이 세상에 남는 건 여자다. 죽음 앞에서 남녀가 바뀌었지만 이 또한 아무것도 아닐수도 있나보다. 조금 더 살고말고 정도의 문제일뿐......

우리는 실망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정작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말 테니까. 원하던 대학에 못 들어갔다고 해서, 좋은 직장을 갖지 못했다고 해서 삶이 바뀔지 어떨지도 모르겠지만 남자의 말처럼 5년을 더 살든 50년을 더 살든 중요한 건 중요한 무언가를 알고 가느냐 그렇지 않으냐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바보가 아하~~! 하고 무언가를 깨닫듯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깨닫고 가는 건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로서 알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뭣이 중헌 지' 곱씹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