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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게 살고 싶은 날..^^

서랍정리를 하며

폭이 좁은 오단 서랍장, 그중에 맨 위칸 한 칸을 정리했다. 너무 욕심을 내서 많은걸 정리하고 치우려고 하면 그날 밤을 새워도 다 못 치운다는 것을 여러 번의 체험으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목표는 단 한 칸으로 정했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겨울옷 집어넣으면서 봄옷도 꺼낼 겸 이참에 옷 정리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리 전문가들 말대로 옷들을 다 꺼냈다가 아침부터 시작한 일이 점심을 지나 오후가 되도록 끝은 안 보이고 점심도 굶었는데 기운은 달리고..  잠깐 쉬었다가 해야지 했던 것이 남편이 퇴근해서 깨울 때에야 비로소 눈을 뜰 수 있었다.

옷이라는 게 정말 장안에 들어가 있고, 옷걸이에 걸려있어서 모를 뿐이지 방바닥에 꺼내 놓으면 옷이 무덤도 그냥 무덤이 아니라 왕릉을 몇 개씩 만들어 낸다. 우리 집에 이렇게 많은 옷이 있었나 싶은 게 절로 반성을 하게 된다. 옷을 살 때는 나한테 잘 어울리는지, 비싸지는 않은지, 질리는 스타일은 아닌지, 유행에 너무 민감하거나 뒤쳐져있지는 않은지 두루두루 고민하며 옷가게를 몇 군데씩 들어가 보고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며 고르는데 막상 옷을 사서 집에 가져오면 옷을 고를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어떤 옷은 사놓고 산 줄도 모르는 채 서랍장 구석에 쑤셔 박힌 채 기억에서 멀어진다. 어쩌다 눈에 띄어 걸쳐봐도 살 때의 열정은 사라지고 내가 이런 옷을 샀어?! 왜...  하고 스스로 되묻게 된다.

서랍장을 열어보니 아예 맞지도 않는데 순간 이뻐 보이고 사이즈가 다 빠지고 한 장 남았다는 이유로 사기도 하고, 그저 값이 싸거나 할인에 들어가서 지금 안사면 다른 사람이 다 사가버릴 것 같아서 샀던 옷도 있다. 이렇게 고른 물건은 골랐다기보다 그저 불안감에 일단 손에 넣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옷들이 제대로 활용될 리 없다.

이상하다. 분명히 입지도 않고, 별로 애착도 가지 않는데 버리기는 너무 어렵다. 누굴 주기도 그렇고, 기부할만한 거 같지도 않은데 버리지도 못하는 건 왜 그럴까. 버리려고 했다가도 다시 서랍 속으로 들어간다. 입지 않는 옷에도 미련이 남다니..  특별히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옷도 아니고, 아끼는 옷도 아닌데.. 옷 하나 버리는데 버릴까 말까를 몇 번씩 고민하다 보면 급 피로해지는 느낌이다. 버릴 때 에너지가 더 든다는 말을 실감한다.

폭이 좁은 서랍장 맨 위칸에는 남편의 속옷과 양말이 들어 있다. 차곡차곡 줄 맞추어 넣어줘도 어느 순간 어질어져 있다. 양말 하나를 꺼내더라도 양말과 양말 사이 손을 집어넣고 꺼내면 옆의 것이 딸려 나오는 법이 없는데 얘기를 해줘도 tv에 눈을 고정한 채 대꾸도 없다. 내 말 듣고 있냐 물으면 역시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다 듣고 있으니 말하란다. 말도 안 되지만 옷을 버리고 싶은 이유다.  

단 한 칸이지만 정리를 했다. 마음속으로 적어도 하나는 버려야지 했는데 실패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버릴 수 있는 게 우리 집에 과연 몇 개나 있을까. 아니 나는 몇 개를 버릴 수가 있을까. 답답하다. 물건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련하게 여겨진다. 버리는 거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만 좁은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버림을 선택해야 하는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그래도 내일은 버릴 수 있겠지.. 이게 다 제대로 버리기 위한 움츠림일 거야.. 스스로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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