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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떤 부부 이야기

집이 어질러져 있으면 괜히 불안하고, 짜증스럽고, 화도 더 잘 내었던 그런 기억들이 있다. 특히 놀러 갔다 왔는데 집 안이 출발할 때의 어질러진 상태에다가 여행지에서 사용했던 물건들, 옷들, 가방 등 정리해야 할게 쌓이면 정말이지 불안지수가 솟구친다. 가족이 함께 하면 좋겠지만 아이들이 어리고, 집 안일에 관심이 없는 아내 또는 남편을 둔 사람이라면 여행에서 즐거웠던 만큼의 크기로 스트레스가 작용할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어떤 부부도 그렇다. 그들에게는 어린 자녀가 둘이 있다. 여행을 잘 다니지도 않지만 어쩌다 가도 즐겁지가 않다는 게 그 아내의 얘기다. 이유인즉슨 남편은 운전하느라 힘들어하고, 아내는 아이들에게 신경 쓰다 보면 여행이 여행인지 낯선 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어차피 떠난 여행이다 싶어 나름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지만 집에 와서 집안일이 쌓여있는 걸 보면 이걸 언제 다 해결하나 싶어 눈물이 난다고 한다. 남편에게 같이 하자고 얘기를 해보지 그랬냐고 하니 남편은 운전하느라 힘들어서 집에 오자마자 자기 바쁘다고 한다.

어느 날 그 남편이 누군가랑 얘기를 하면서 자기 아내는 여행 가는 걸 싫어한다고 했단다. 아내는 여행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아이들과 씨름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어딜 가는 게 달갑지 않았던 건데 남편은 달리 해석을 한 듯했다. 어딜 갈 때도 준비는 자신의 몫이고, 가서도 아이들을 돌보는 것 역시 그렇고, 갔다 와서도 오롯이 본인이 다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행이 어떻게 즐거울 수 있냐며 속상해한다. 왠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어쩌랴. 그의 남편이 운전하면서 느끼는 긴장으로 인해 피로가 쌓여서 도와줄 수 없다는데야..

그런데 아내의 말이 재미있다. 한 번은 그 부부와 다른 세 쌍의 부부가  2박 3일인지 3박 4일이지 제주도를 갔단다. 차를 렌트해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그렇게 운전을 할 때마다 피곤을 입에 달고 다니던 사람이 기간 내내 혼자 운전을 다하고 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피곤하다 소리는커녕 다른 사람이 교대로 운전해주겠다는데도 굳이 사양을 하더란다. 가족끼리 다닐 때는 아이 좀 봐달라 손치면 "그럼 당신이 운전해봐, 얼마나 피곤하데.."라고 말하던 사람이.

그 아내는 자신의 남편도 피곤하겠지만 자신도 피곤하다는 걸 남편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슬프다고 한다. 얘기를 해도 듣지 못하는 남편을 무척이나 야속해했다. 그 남편이 피곤해서 그런 건지 귀찮아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아내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나이 드신 분들도 집안일 함께 하는 걸 당연시하는 세상인데 남편이 바깥일에 힘들고 피곤해도 조금은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란 그런 거니까. 그래야 부부니까.

그 아내에게 말해줬다. 어디를 가든 집을 나서기전에 정리를 하고 출발하라고. 아무리 즐거운 여행이라 해도 피로는 누적되기 마련인데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정리된 집은  '아~ 내 집에 왔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안정감을 가져다주지만 그렇지 않은 집은 할 일로 가득 쌓여 들어왔던 그대로 돌아서 탈출하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운전을 할 때와 다른 사람이 운전을 해 줄 때를 굳이 비교하자면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달라지지 꼭 운전을 하지 않을 때가 덜 피로한 것만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고 경험이니만큼 운전을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해주었다. 그러면 운전하느라 피곤한 남편을 대신해 줄 수도 있고, 피곤하게 운전했으니 조금 쉴 수도 있을 테니.  그 부부에게 좁쌀만 한 변화라도 생기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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