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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계좌를 해지하다가

잠깐이지만 다녔던 직장을 퇴사하고 나니 약간의 퇴직금이 생겼다. irp계좌는 이미 만들어 놓은 지 오래되었고, 이 계좌로 들어온 퇴직금을 수령하러 은행에 갔더니 기본 세액을 적용, 생각보다 많은 세금이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계좌를 해지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당장 퇴직금을 찾기보다 추가로 납입을 하고, 후에 연금으로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계좌를 해지하려던 걸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인터넷도 검색하고 유튜브도 확인하고 은행보다는 증권사가 퇴직금을 굴리기에 좋다는 결론을 내리고, 모 증권사의 비대면 계좌를 개설하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로 막히는 부분이 많아 직접 증권사를 찾았지만 여러 제약이 있고, 무엇보다 상담하시는 분이 전문성이 떨어져 자꾸 물어보기도 서로 민망한 상황이 되어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이곳저곳 알아보고, 보관수수료가 무료라는 또 다른 증권사 앱을 다운로드하고 다이렉트 irp 계좌를 개설, 타사 irp 가져오기를 신청해두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고 새로이 irp를 개설한 증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았더니 상담사 말이 타사에서 나의 irp 가져오기 신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우째 이런 일이...ㅠㅠ  어째서 irp이동이 거절당했는지 은행에 전화를 걸었더니 내가 처음 퇴직금 계좌를 해지하기 위해서 만났던 창구의 직원과 통화를 할 수 있도록 연결을 해주었다. 얘기인즉 그분은 내가 계좌를 해지하려다 고민을 했고 다시 해지해달라고 해서 해지해주지않았냐는 것이었다. 너무 난감했다. 나는 계좌를 해지하는 것을 취소해달라고 하고 돌아와서 옮겨갈 증권사를 열심히 찾아봤는데..

서로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건 반복적이기만 할 뿐 일을 처리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되어서 일단 말을 끊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방법이 없나요?" 하고  물었더니 예상치 않은 답이 나왔다. 일단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뭔가 맥이 빠지는 느낌. 잘잘못을 떠나 상황이 그러면 일단 알아보겠다고 했으면 각자 자기 입장에서 말이 길어질 이유가 없었을 것을..  얼마 안 있어 전화가 왔고, 원래대로 할 수가 있다는 게 결론이었다. 어쨌든 잘 되었다 싶어 다음날 신분증과 통장을 가지고 방문하면 된다는 말에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 직원이 말을 이었다.  자신은 확실히 기억하는데 왜 해지하겠다고 해놓고 아까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냐고 책임을 순전히 내 탓으로 돌리듯 말을 하는 것이었다. 순간 이 사람 뭐지? 뜬금없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건가 싶어 나도 나의 말에 확실히 기억한다. 내가 취소를 하지 않았으면 굳이 증권사에 가서 상담하고 증권사 앱 깔고 irp 이동 신청을 했겠냐 하니 아니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오해라며 자신은 이러이러한 의미로 얘기한 거라고. 그러면서 창구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건  아마 그때는 서로 마스크를 쓰고 있어 서로 잘 못 알아들었던 것 같다며 말 머리를 돌렸다.  듣기에 따라서는 자신은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딴소리를 하고있다는 거였는데 아무튼 그런 뜻으로 얘기한게 아니라고하니 이야기가 길어져봤자 서로에게 득이 될 게 없어 그냥 좋은 게 좋다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은행 창구직원과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irp계좌라는 게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목적이다 보니 5년 이상 유지해야 하고 일정 연령까지 기다려야 하는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미 한 가지 조건은 충족된 나로서는 계좌를 내 계획대로 유지하는 게 유리하지만  다음날 그 직원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언제 방문 가능하냐고 해서 11시까지 가겠다 했더니 일처리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중간에 점심시간이 껴서 애매하니 10까지 방문하라고 해서 그렇게 하마 약속을 해 놓은 터라 안 가더라도 얘기는 해줘야 할 것 같아 전화를 했다. 바쁘기도 하고 일이 번잡해질 것 같아 그냥 여기서 일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아무튼 일을 마무리해주려고 노력해줘서 고맙다 했더니 그 직원이 말한다.  irp는 오래 유지 못할 거면 계좌를 안 만드느게 낫고, 중간에 해지하면 추가 납입한 금액에 대한 세금을 많이 내고 등등등등.  분명 나를 위해 해 주는 말 일터인데 이미 알고 있는 말이기도 했지만 그런 말을 들으려고 전화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일단락 지어줘야지 그 쪽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전화하고픈 마음이 없었음에도 전화를 했는데 괜히 전화했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이미 예상치 못한 일로 계획이 틀어지고 기분도 상해 내 계획을 실현하려던동력을 잃어서 창구를 방문하기 싫었던 나로서는 그의 말이 그저 피로감으로만 다가왔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상대방의 말을 듣는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말을 잘 못 할 때도 있고, 잘 못 알아들을 때도 있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글을 쓰다 보니 상대를 탓하듯이 되어버렸지만 분명한 건 일의 책임 소재도 중요하지만  일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훨씬 중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그 행원의 말대로  본인도 그런 방법이 있는줄 몰랐다고 했지만 모르면 일단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고, 만약 방법이 없다면 어쩔수 없는거 아닌가. 아무튼 생각지도 않은 일로 인해 내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것들이 틀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마스크 때문이든 각자 하고 싶고, 듣고 싶은 말에 집중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새삼스레 소통의 중요성과 함께 돌다리도 두드리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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