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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 이야기 1

호기심이 많은 아이

일곱살 난 아이가 있다. 아이에겐 저보다 세 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아빠는 일로 바쁘고 엄마는 육아에 집안일에 늘 지쳐있다. 밤낮이 바뀌고 삼시 세끼를 집에서 먹어야 하는 일을 업으로 가진 아빠와 아직 어린 자녀들 때문에 일을 갖지는 못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아낄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엄마. 요즘 같으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했을 터지만 그때는 사회분위기가 그렇지 못했다.

아이는 그래도 그 때가 마음이 가벼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다음 해 엄마가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동생은 언제나 아이의 몫이었으니까. 동생을 무척 아끼고 이뻐했지만 동생의 보호자가 되는 건 초등학교 1학년짜리에겐 분명 버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일곱 살 어느 초여름 날 오후, 따사로운 햇살은 책을 읽는 아이의 이마를 밝게 비추고 있었고, 바람은 똘똘한 눈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짚어가는 아이의 뒤통수에 하나로 묶인 머리에서 흘러나온 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매만지고 있었다. 그 옆에서 엄마는 아직은 하루가 긴 동생을 재우다 어느새 같이 잠이 들어있었다.  아이는 언젠가부터 책을 좋아했고, 그 무렵 아이는 "수학귀신"이라는 책에 푹 빠져있었다. 수학귀신은 아마도 엄마가 라디오나 신문 따위에서 책을 소개하는 이야기를 들었거나 서평을 듣고 사줬을 것이다. 그렇다고 엄마가 그 책을 읽어봤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게 그 엄마는 아이가 떠듬떠듬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부터는 아이의 책을 함께 읽어주는 대신 동생에게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말투와 톤으로 그림책을 연기해줬으니까.

아이가 문득 엄마를 흔들었다. 엄마는 부스스 눈을 뜨고, 무슨 일인지 도대체 지금이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 이진법이 뭐야?" 엄마는 뭔가 잘 못 들었다 싶었는지 다시 물었다. "응? 뭐라고?"  아이가 다시 물었다. "이진법이 뭐냐고." 엄마는 잠결에도 웃음이 나왔던지 픽 웃으며, "그건, 왜? 하고 묻자 아이가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책을 엄마 코 앞에 들이밀고 "여기에 나오는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 라며 귀여운 손등으로 코를 문지른다. 엄마는 "똥강아지야, 이진법은 여기 사과가 있다고 해봐. 사과 두 개가 되면 한 접시가 되는 거야. 어쩌고 저쩌고~~" 엄마는 중학교 때 배운 이진법에 대해 그리고 십진법에 대해 설명하고 아이에게 공책과 연필을 가져오라고 한다.   "똥강아지, 엄마가 문제를 10개 내줄게. 엄마가 했던 얘기를 잘 생각해 보면서  이진법은 십진법으로 십진법은 이진법으로 고쳐봐. 단, 다 풀 때까지는 엄마를 깨우거나 혼자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알았지?  약속~~" 하며 손가락까지 건다. 아이는 "응!" 미소와 함께 대답하고 바닥에 배를 깔고 두 발을 하늘로 올린채 연필 쥔 손에 힘을 주기 시작한다.

엄마는 뭔가 편안하고 안심되는 눈 빛으로 동생에게 베개를 다시 고여주고 동생을 뒤에서 안은채 이내 눈을 감는다. 살포시 다시 잠에 빠져들려는 순간 아이가 다시 엄마를 흔든다. 엄마는, 방금 약속했잖아? 이렇게 금방 깨우면 반칙이지?! 하는 눈 빛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의 표정이 의기양양하다.  "엄마, 나 다했어!" 엄마는 설마~~ 하는 눈빛으로 아이를 한번 쳐다보고 공책을 살펴본다. 역시 아이들은 천재구나..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엄마는 순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아이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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