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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 이야기 1

햄스터를 떠나보내며

아이가 신이 나서 초인종 대신 문을 두드리며 엄마를 불러댄다. 엄마는 깜짝 놀라서 개던 빨래를 내던지듯 일어나 아이에게 문을 열어준다. 아이는 엄마가 채 문을 열기도 전에 작은 상자를 들이민다. 아이의 볼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고,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이게 뭐야?" 엄마는 상자에 든 햄스터를 보며 아이에게 묻는다. 아이는 또래들과 키는 엇비슷하지만 조금 마른 체형이다. 피부가 뽀얀 아이는 옆으로 가늘게 긴 눈에 늘 미소가 꽃처럼 피어있다.  아이는 햄스터가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엄마, 학교 앞에서 어떤 형아가 줬어. 그 형이 햄스터 가질 거냐고 해서 내가 얼른 갖겠다고 대답했더니 나한테 두 마리를 줬어. 근데 친구도 갖고 싶어 해서 한 마리는 걔 줬어!" 들떠서 얘기하는 아이의 순수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그 옛날 어디서 본직이 있어 비유할 수 있을까. 

아이가 데려온 햄스터는 햄스터를 모르는 엄마가 보기에도 나이가 들어 보였다. 게다가 다리도 다쳤는지 오른쪽 앞발이 틀어져있다. 아주 오래전에 다쳤는지 아니면 그렇게 태어났는지 겉으로 상처나 흔적이 남아있지는 않다. 문제는 아이는 이렇게 좋아하는데 엄마는 그렇지 못하다. 아토피가 있는 아이에게 햄스터 키우기가 별로 좋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게다가 동물을 너무나 무서워하는 엄마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아이는 마치 동생처럼 햄스터를 귀히 여기고, 아껴준다. 다른 사람 주자고 이런저런 말로 얼르고 달래고 겁을 주지만 아이는 햄스터를 이미 마음에 단단히 담고 있어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는 눈치다. 아이에게 햄스터를 준 형아의 엄마는 어떻게 아이를 설득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나쁘거나 해되는 일이 아닌 다음에야 아이들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결국 허락을 한다. 햄스터는 네가 키우기로 했으니 네가 먹이도 챙겨주고, 물도 갈아주고, 집 청소도 해줘야 한다. 안 그러면 안됐지만 햄스터는 다른 집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눈에 힘을 빡 주고 손가락을 걸고 도장까지 찍으면서 단단히 약속을 한다. 하지만 엄마는 잘 안다. 결국 머잖아 아이들과 더불어 햄스터까지 돌봐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보다 아이는 햄스터를 잘 돌본다. 먹이도 주고 물도 주고.. 햄스터는 집이 낯설어 그런가 먹이를 잘 받아먹지 않는다. 아이는 집도 청소해 준다. 그러나 쉽지 않다. 햄스터를 작은 상자에 옮겨두고 톱밥을 갈아주려는 사이 햄스터가 도망을 가버려 자꾸 숨어버리곤 했다. 어쩌면 아이가 부러 햄스터에게 잠깐의 자유를 부여하는 걸 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아이가 햄스터 집을 청소하겠다 하는 순간 잠깐만 잠깐만!! 숨이 가빠지며 하던 일은 올 스톱, 소파 위로 기어오른다. 아이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햄스터를 저렇게 덩치 큰 엄마가 어떻게 무서워할 수 있을까..

아이가 생애 첫 수련회를 갔다. 엄마는 아이가 궁금하다. 괜스레 햄스터를 들여다보게 된다. 먹이도 충분하고 물만 좀 갈아주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햄스터도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다. 저를 이뻐해 주는 아이가 없는 줄을 아는지 햄스터도 조용하다. 밤이 되면 혼자서 뭘 하고 노는지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나곤 했는데 그런 소리마저 없다. 

아이가 없는 집안은 절간 같다.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고 햄스터 녀석은 뭘 하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잠을 자는지 움직임이 없다. 뭔가 좀 다른 느낌이다. 기척을 내보고, 집을 가만히 흔들어봐도 미동조차 없다. 수련회에 간 아들은 곧 돌아오는데 자신이 아끼는 동물이 먼저 하늘로 간 걸 알면 얼마나 슬퍼할까..  차라리 저 혼자 어디로 도망갔다고 할까. 아들에게도 햄스터에게도 미안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들과 햄스터가 엄마 눈치 보지 않고 즐겁게 놀도록 둘걸..  그리고 조금 더 일찍 햄스터에게 마음을 열었으면 좋았을 것을..  햄스터에겐 안식을 아이에겐 위로를 기원하며 아이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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