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떤 아이 이야기 1

자신이 보석인 줄 모르는 아이

그때 그 아이는 고삼이었다.  그 아이의 부모는 공무원도 , 따박따박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도 아니었고 자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경험이 일천한 상태에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식당처럼 소문만 나면 어느 순간 손님이 줄을 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업종도 아니었다. 지방의 24평 임대아파트에 살기 시작해  분양을 받아 눌러앉아 십수 년째 살고 있는 주공아파트는 그들이 가진 재산의 전부였다.

대학 진학을 위해 아이는 모든 걸 혼자 준비해야 했다.  그 흔한 학원도 초등학교 때 잠깐 다녔던 피아노 학원이 전부였고, 대학입시를 위해 고삼이 되어서 잠깐 영어 과외를 더 받았을 뿐이었다. 고작 몇 개월의 영어 사교육은 아이가 대학을 입학하는데 그다지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과외선생은 아이가 실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영어 점수는 나쁘지 않다고 했는데 이유는 아이가 배경지식이 많아서 대충 본문을 보고 답을 고르면 그게 답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영어를 국어로 푼다는 말인듯했다.

아이는 머지않아 과외를 그만두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가고 싶은 대학과 전공과목, 성적도 고려를 해야 하고..  알아보면 그런 걸 도와줄 곳은 얼마든지 많은데 부모는 경제적인 여건도 여건이지만 관심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부모를 탓하기 어려운 건 그들은 자신의 일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는 걸 원칙으로 알고 살았던 세대였고,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었으며, 한 편 자신들의 아이가 자신들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부모들이 아이들의 모든 걸 챙겨주고, 코치하고, 인생을 정해주는 게 보편화되기 시작한 게.  물론 예전에도 자녀들 교육에 모든 걸 거는 사람들이 없진 않았지만 요즘처럼 육아 주머니 속에 아이를 품고 사는 캥거루 같은 부모들이 많아진 건 그리 오래전 얘기는 아닌 거 같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바르게 자라도록 도와주고, 뒷받침해주는 게 무엇이 나쁘겠냐만은 그렇게 해줄 여건이 안될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  처음부터 금수저인 줄도 모르고 물고 나와서 충분한 물과 거름과 햇볕을 받을 수 있는 거야 말로 인생 최대의 로또가 아니겠는가. 

우연히 그 아이가 쓴 자기소개서를 볼 기회가 있었다. 아이는 자신을 뽀얀 달항아리에 비유했다. 참 탁월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박하지만 은은하고 무던한 아름다움..  아이 스스로는 그저 평범하고 자신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해 뭔가 자신을 왜곡시키려 드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복잡하고, 유난스럽고, 통통 튀는 것만이 개성이라고 여겨지는 요란한 세상에서 달을 꼭 닮은 달항아리처럼 편안하고 안도감을 주는 아이의 모습이 단아하게 느껴졌는데 그 아이는 그게 얼마나 좋은 덕목인지는 모르는 듯했다. 세상에는 반짝이는 것보다 천배 만배 더 값진 보물이 있다는 것을 그 아이가 알았으면 좋겠고, "아이야, 바로 네가 그런 존재란다"라고 말을 해주고 싶다.^^

'어떤 아이 이야기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햄스터를 떠나보내며  (0) 2021.06.02
호기심이 많은 아이  (0) 2021.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