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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글귀들..

삶과 죽음의 길이 예 있으매 두려워...

학창 시절 교과서를 받으면  집에 오자마자 훑어보곤 했었다-국어책만^^.   그때도 잘 사는 집들은 책도 많고, 잡지책도 다달이 사서 보고 책꽂이에 꽂아놓았지만 우리 집은 그다지 여유가 없었다. 부모님은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 보니 교육이나 문화 같은 거에 신경 쓰실 여력도 없었거니와 나 또한 그런 걸 요구할 만큼 철이 없지도 않았던 듯하다. 그러다 보니 읽을거리, 볼거리 등이 마땅치 않은 나는 국어 교과서를 받는 날이면 마치 소설책이라도 되느냥 신이 나서 읽곤 했었다. 

국어책을 쭉쭉 넘겨가며 재미있어 보이는 이야기부터 하나하나 읽어가다 마지막에야 앞으로 가서 시를 읽어보곤 했는데 어느 날인가 '제망매가'를 읽고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한창 사춘기여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마구 마음과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던 때라 더 가슴에 와닿았었던 것 같다.

사람이 나면 언제가 죽기 마련인데 그걸 다 알면서도 왜 그리 헤어짐은 힘들고 서러운가. 내세가 없다면 가는 사람이야 가야 함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가야만 하는 순간까지가 정말이지 못견디게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남겨지는 사람은 그 기간을 지나 그리움을 비롯한 여러 생각을 고이 접어 마음에 넣고 빼기가 어느 정도나마 가능할 때까지 그럴것 같다. 미련이라는 거 정말 미련스럽게도 떨치기가 힘들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어느 순간 한 가지 생각에 매몰되면 깊은 모래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헤어 나오기 힘든데, 모든 걸 두고 가야 하는 혹은 내 전부인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오죽하랴. 그래서 있을 때 잘하라고 하는가 보다. 

'제망매가'는 신라 경덕왕 때의 승려 월명사가 죽은 누이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노래로 불교적인 색채와 당시 신라인의 생각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천 년을 넘어 지금까지 이렇게 누군가의 가슴에 사무치는 건 삶과 죽음에 대한 순수한 감성이 시공을 넘어 인간의 마음을 관통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제망매가 (祭亡妹歌)

삶과 죽음의 길이
예 있으매 두려워
나는 가노란 말도
못 다 이르고 갔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서
가는 곳 모르겠구나
아, 극락에서 만날 날
도 닦으며 기다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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