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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에게..

한밤중 울음소리에

한밤 중 식탁에서 뒤적뒤적 핸드폰을 가지고 심심함을 달래고 있는데 묘한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이런소리가 나지? 이상하긴 했지만 그닥 큰소리도 아니고,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어서 무시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소리가 더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방에서 나는 소린가 싶어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집안에서 나는 소리는 아닌것 같아  주방에서 베란다로 이어지는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베란다 창문 밖에서 나는 소리임이 틀림 없었다. 베란다 창문을 가만히 열자 생각보다 훨씬 큰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은 오층이고, 우리 아파트의 맨 끝에 위치한 동이다. 우리 아파트 동 뒤에는 벤치들이 놓여있고, 비를 맞지 않게 정자모양의 천막이 기둥을 의지해 하얀색 뾰족 지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나무들이 있는데 특히 칠엽수 들이 우람하게 자라 거의 삼사층까지 줄기가 우뚝하고 잎새가 빽빽하다. 그래도 그 사이로 히끗히끗 사람의 모습을 붙잡을 수도 있어 나는 궁금증을 가지고 나뭇잎사이를 요리조리 틈을 만들어 본다.

혹시 우리 집 베란다 문 여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혹시 아래에서 우리 집을 어쩌다 올려다 보다 나를 보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 가만히 주방으로 들어와 불을 끄고 다시 베란다로 나가 가만히 아래를 살펴보았다. 

누군지는 모르겠다. 짐작으로는 최소 고등학생 이상 20대 초반의 남자 목소린데 울음소리가 상서롭지 않다.  계속되는 울음소리에 우리 아파트 뒤로 인접한 주택과 원룸 건물에서도  창문을 열고 울음의 출처를 찾으려는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들었던 울음소리 중에 이렇게 서러운 울음소리가 있었던가 싶을만큼 애처럽게 운다. 우는 이 주위로 두세명이 더 있는듯 한데 아마도 둘은 어른이고 하나는 또래 정도의 청소년 정도인 것으로 보아 동생이나 형 또는 친구와 부모님이 함께 있는게 아닌가 싶다. 우는 이와는 달리 함께 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한 것이 가만히 위로의 말을 건네며 마음을 달래는 듯하다.  밤늦게 멀리서 쌩하니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유난히 크고, 밤 개구리 울음소리는 또 언제부터 이렇게 요란했지 싶은데 그가 하는 말은 그자신의 울음소리에 섞여 도저히 알아 들을 수가 없다. 그냥 슬픈 소리도 아니고, 단지 억울한 느낌의 소리도 아니고.. 참으로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몰래 무슨 일인가 싶어 귀기울이던 나조차 베란다 바닥에 무릎을 껴앉고 함께 울게 만들었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남자가 우는 소릴 처음 들어서 그런가 가슴이 철렁하고,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그 나이대는 자존심도 강하고, 우리 나라에서는 남자는 울어서는 안된다는 문화적인 분위기로 인해 다른 사람 앞에서 큰 소리로 울기는 쉽지 않을 듯 한데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그렇게 서럽게 우는 것일까...  왜 그리 우는지, 등이라도 쓸어주고 싶지만 그럴수도 없고..  그냥 가만히 아무도 모르게 함께 울어주면서 그가 누군지 그리고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저 잘 해결되고, 마음에 평안이 깃들기를 빌어본다.

얼마전 친구 아들이 먼저 천국으로 가고, 우리 아들을 잘 따르는 아들의 후배아이의 친구가 또 하늘 나라로 갔다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이 아이들을 그토록 힘들게 했을까. 오죽 절망스러웠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의지할 사람이 혹은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런 안타까운 선택을 하지 않았을텐데.. 아이들은 얼마나 외로웠을 것이며, 남겨진 가족은 또 얼마나 잘 해주지 못한 것만 떠올라 두고두고 가슴에 돌덩이를 메달고 살게 될까.. 생각만해도 가슴이 미어진다. 살다보면 별의 별일이 다 많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 모든 일이 사실은 별개 아니었음을 내 나이가 되면 알게 되는데 그걸 어떻게 아이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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