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느 날 나에게..

별과 함께 걷는 밤

열기를 숨긴 바람이 분다. 언뜻 시원하고 언뜻 덥게 느껴진다.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가 많아 머리가 무겁다. 어쩌면 움직임이 적어 머리가 무거운 것일 수도 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난 후 TV 리모컨을 이리저리 눌러봐도 딱히 구미가 당기는 프로그램이 없다. 

밖에 내놓으려고 현관에 정리해 둔 재활용품을 담은 바구니가 눈에 들어온다. 음식물 쓰레기도 수거함에 버려야 하는데.. 귀찮지만 주섬주섬 챙겨 나간다.  하루라도 재활용품이 발생되지 않는 날이 없다. 물도 끓여먹고, 음료수나 과자 등은 거의 사지 않는데도 과일이나 두부를 담은 플라스틱과 고기를 담은 납작한 사각 접시 모양의 스티로품, 콩나물이나 시금치 같은 채소를 담은 비닐봉지 등이 서로 번갈아가며 하루가 멀다 하고 배출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밖으로 들고 나간 것들을 제 자리에 처리하고, 기왕 나간 길에 아파트 안 광장을 한 바퀴 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인적이 뜸하다. 늦게 귀가하는 사람들은 잰걸음이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둘 있다. 강아지들은 서로 호감을 보이지만 강아지 주인들은 각자의 강아지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잡아 끈다. 103동 삼사라인 현관 센서등에 불이 들어오고 반바지 차림의 아저씨 한 분이 모습을 드러낸다. 쓰리빠를 끌고 어슬렁어슬렁 나오는 사람은 십중팔구 흡연자다. 담배꽁초를 버릴 수 있게끔 커다란 깡통이 준비된 벤치 쪽으로 이동해가는 폼이 틀림없다. 

아파트 내 작은 광장을 돈다. 한 바퀴, 또 한 바퀴, 또 한 바퀴..  혹시라고 아는 사람을 만날까 나무 그늘을 찾아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광장 한쪽 가로등 아래에 어떤 사람이 휴대폰을 들고 통화 중이다. 거리가 있어 무슨 내용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말투와 목소리로 보아 급하게 통화를 하는 건 아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통화를 할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문득 부럽다.

걸음을 옮기다 보니 열 바퀴를 채워야겠다 싶은 욕심이 든다. 열 바퀴래야 대략 20분 정도면 충분할 터다. 처음엔 한 바퀴 두 바퀴 헤아리면서 돌았지만 이내 잊어버린다. 다른 생각에 골똘한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고개를 있는 대로 뒤로 꺾다 문득 멈춘다. 몇 없는 별 중에 하나가 내 정수리 위에서 나를 따라 걷고 있었다.  "저 별이 내 별이구나.." 직감으로 안다. 재미로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할 때와는 다른 차원이다. 분명 눈이 마주쳤다. 별과 눈이 마주치다니..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이제 나는 어딜 가서도 그 별을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대여섯 바퀴를 돈 다음 방향을 틀어 반대로 다시 몇 바퀴를 더 돈다.  어쩌다 광장에 들어서면 시계방향으로 몇 바퀴 돌고 반드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몇 바퀴를 더 돌아주는게 오래된 습관이다. 왠지 그렇게 해야 뭔가 균형이 맞을 것 같다. 

피로가 몰려온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그 새 별자리가 바뀌 었다. 아니 내가 방향을 바꿔서 그런가 보다, 하늘을 더듬어 나의 별을 찾는다. 여전히 나만 바라본다. 나만이 광장을 걷고 있다. 비가 얼마나 오려는지 바람에 끈적임이 묻어난다. 별에게 소원 따위는 빌지 않는다. 그냥 별이 거기 있어서 좋다.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인사도 하지 않는다. 늘 거기 있어줄 테니까.

'어느 날 나에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밤중 울음소리에  (0) 2021.05.24
어쩌다 마주친 고양이  (0) 2020.05.18